총자산 5조원 이상으로 출자총액 규제를 받는 13개 민간 대규모 기업집단의 총수는 평균 1.48%의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지만 이들이 영향력을 미치는 지분은 46.2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가 계열사.친인척 등이 보유한 지분을 통해 실제 지분의 31배에 이르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총수 일가 전체 지분(3.41%)을 기준으로 해도 보유 지분 대비 영향력이 13.5배에 달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7일 이 같은 내용의 그룹별 총수 일가 지분 보유 현황을 공개했다.
공정위는 총수들이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1~2개 기업에 대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기업을 정점으로 계열사 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출자(순환출자)를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날 "여전히 우리나라 그룹들의 지배구조는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계는 정부가 나서서 민간 그룹의 지분을 종합 정리해 공개하는 것은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기업을 압박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번 공개가 사생활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며 헌법소원이나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지를 검토 중이다.
◆ 지분 구조 = 공정위는 매년 총수와 친.인척으로 뭉뚱그려 발표하던 지분 현황을 이번에는 총수, 배우자 및 1촌, 2~4촌, 4~8촌 등으로 자세히 나눠 발표했다. 기준 시점은 지난 4월 1일이며 공개 대상은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집단 51곳이다. 이 중에는 포스코나 KT 등 총수가 없는 그룹 15곳도 포함돼 있다. 총수는 민간기업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총자산 2조원 이상으로 계열사 간 상호 출자와 채무보증이 금지되는 36개 민간 그룹의 총수들은 평균 1.95%의 계열사 지분을 갖고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삼성.롯데.두산.신세계.LG 전선 등 12곳은 총수 지분보다 배우자와 직계가족(1촌)의 지분이 더 많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들 그룹은 경영권 이양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에 지분 구조가 공개된 36개 민간그룹 중 18개 그룹 소속 67개 금융.보험사가 109개 계열사에 2조3600억원을 출자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금융 계열사의 자산은 고객 돈인데 이를 계열사에 출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표된 내용은 공정위 홈페이지(www.ftc.go.kr)에 게재된다.
◆ 공개 논란 = 재계는 소유.지배 구조는 기업이 알아서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찾으면 되는 것인데도 정부가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이를 종합해서 발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정부가 기업의 소유.지배구조에 개입하려는 것은 재산권 침해의 소지가 높다"면서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 이 같은 공개 방식은 대폭 손질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분기 보고서 등을 통해 지분 현황이 공개되는 상장사와 달리 비상장 계열사의 경우는 지분을 공개할 의무가 없는데도 이를 정부가 나서서 공개한 것은 지나치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공정위 해석에 대한 반발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총수 일가가 너무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며 지분 분산을 유도했다가 이제 와서는 지분이 적어서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상무는 "정부가 스스로 정책의 신뢰성을 저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은 "총수 일가가 지분을 이용해 부당한 지원을 했다면 몰라도 한국 경제 현실의 산물인 현행 지분 구조를 문제 삼는 것은 괜한 갈등만 부추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지분 공개는 주주나 투자자들에게 각 그룹의 소유.지배 구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장항석 공정위 독점국장은 "대부분이 이미 기업 보고서 등을 통해 공개된 내용이며 비상장사의 경우도 연결.결합재무제표 등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라며 "공익적 필요에 의해 기업 정보를 일부 공개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