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영향과 대응책

정부가 국제통화기금(ＩＭＦ)이 우리측에 제시한 「저성장－저물가－세금인상」이란 경제운영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국민은 당장 내년부터 춥고 긴 ＩＭＦ한파에 시달리게 됐다. 특히 정부와 ＩＭＦ간 협상에 우리측 주장이 크게 밀림에 따라 향후 우리 경제의 주도권의 상당기간 ＩＭＦ외풍에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멕시코와 한국 경제의 현주소는 「시소」를 연상케 한다. 멕시코는 시소의 올라가는 쪽이고 한국은 내려가는 쪽이다. 한국은 최근까지 단기간의 고도성장 모델로 개발도상국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 한국경제가 금융 및 외환위기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제는 멕시코의 재기 모델을 꼼꼼히 살펴봐야 할 처지가 됐다. 멕시코의 경제위기는 94년 기초 경제력에 비해 과대평가됐던 페소화 가치의 폭락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제금리가 상승하자 멕시코 채권과 주식에 투자했던 자금을 인출, 페소화 가치를 곤두박질치게 했다. 이 와중에 멕시코정부는 페소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무제한 풀면서 시장에 개입했다. 93년말 2백45억달러이던 외환보유고는 94년말에 61억달러로 격감했다. 바닥을 드러낸 외환보유고도 문제였지만 외국인들은 경제여건에 걸맞지 않은 페소화 지지 노력에 실망했다.

멕시코 금융기관들도 금융위기에 일조했다. 이들은 적절한 신용평가없이 기업 및 가계대출을 늘리는데만 노력했다. 그 결과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으며 급기야 도산위기에 빠졌다. 금융감독기관도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다. 최근의 한국은 그 재판(再版)이나 다름없다. 결국 멕시코는 총체적 경제위기에 빠져 95년 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 2백72억달러의 구제금융(지원약정 금액은 5백16억달러)을 받았다. 이때부터 멕시코의 눈물겨운 긴축시대가 펼쳐진다. 멕시코정부의 노력은 투자신뢰도 회복과 노사정(勞使政) 합의에 바탕을 둔 강력한 경제안정화시책 실천에 집중됐다.

1. 전격 타결 배경

정부와 IMF는 당초 내주초에 최종협상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IMF구제금융신청 이후에도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가 전혀 회복되지 않는 등 금융위기가지속되자 일정을 대폭 앞당겼다.

특히 우리측 이행조건이 확정되지 않고서는 12월 1일부터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6개국 재무장관회의에서 캉드쉬 IMF총재와 주요국 재무장관간 사이에 논의될 한국에 대한 자금지원이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절박감도 한몫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이에 따라 29일 밤 고건(高建)총리 주재로 김용태(金瑢泰)대통령 비서실장과 임창열(林昌烈)경제부총리, 김영섭(金永燮)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IMF대책회의를 소집, 30일 새벽 1시30분까지 IMF의 요구조건을 논의, 대부분 수용키로 한 것이다.

정부는 특히 IMF가 국내 몇몇 부실은행과 종금사의 파산을 요구하는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하자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거시경제운용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퇴출 문제는 결론을 짓지 못한 채 향후 며칠 더 논의한 뒤 결정키로 해 여전히 이번 협상의 주요 불씨로 남아 있다.

2. 경제 어떻게 달라지나

당장 내년 경제성장률이 우리 정부가 생각했던 국내총생산(GDP)기준 6-6.5%에서 3%로 낮아지게 되며 「인위적인 긴축」에 따른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날 전망이다. 또 긴축성장과 함께 예산삭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각종 정부 주도 대형공사의 차질과 기업의 투자심리 위축 등으로 인한 대량 실업사태가 사회문제로 비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부가가치세율 인상도 사실상 사업소득자의 수입감소를 뜻하는 것이어서 고실업과 함께 소득감소마저 겹쳐 국민들이 느끼는 피부경기는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 이상으로 춥게 느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환율상승 등으로 물가상승 압력은 높아지고 있는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물가를 4.5%대에서 묶으려면 결국 임금동결 등의 비상조치가 뒤따를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협상결과는 IMF의 요구가 거의 수용된 것이고 이는 당초 정부가 주장한 「한국은 경제 기초여건이 좋고 경상수지 적자도 줄어드는 등 앞서 구제금융을 받은 태국·인도네시아 등과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이행조건이 덜 까다로울 것」이라는 낙관 섞인 기대가 전혀 받아들여 지지 않은 것이다.

금융구조조정과 함께 대기업들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역시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29일 재정경제원에 따르면 林昌烈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은 이날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자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은 물론 대기업의 구조조정 작업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밝혀 국내 대기업의 과도한 차입경영 관행 등에 앞으로 상당한 제약을 가할 것임을 분명히했다. IMF 역시 기업의 과다한 차입경영에 따른 부실화가 곧바로 금융기관 부실화를몰고 왔다는 견해를 유지하면서 부실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우리측에적극 요구할 태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재경원은 예상하고 있다.

IMF의 공식 입장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한보와 기아사태 이후 급속히 악화된 한국의 경제위기는 차입 위주의 외형 중심 경영을 해 온 재벌들의 경영 실패가부실 금융기관을 낳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IMF측과의 협의가 현재 진행중이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에대해 구체적인 방향을 잡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금융기관 부실화의 큰 원인이 기업의 과다한 차입경영과 투명하지못한 경영 관행에 있다는 데에는 이견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대기업 구조조정은 경영의 투명성과 차입경영 제약을 최대한 확보하는 쪽으로 모아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이를 위해 재벌그룹의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과 내부자거래 관행, 재벌회장의 독단적인 경영, 기업 회계장부의 불투명성 등을 개선하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는 그러나 IMF가 부실 대기업 처리와 관련, 정부의 직접 개입에는 반대하는대신 시장메커니즘에 따라 처리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정부가 인위적으로 대기업의 구조조정에 나서기 보다는 인수. 합병(M&A)을 적극 유도하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잡아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우선 정부 기업 근로자 등 각 경제주체가 당면한 경제문제의 심각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뼈를 깎는 고통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긴축정책의 강도가 셀수록 경제회복 속도는 빨라 질 것이다』 멕시코의 에르네스토 세디요대통령은 지난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에서 이렇게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