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이제 더 이상 소수의 전문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제 컴퓨터 시스템은 급격한 속도로 현대 기업경영에 이용되고 있고, 기업의 전략적 도구로서 그 중요성은 더욱 증가되고 있다. 최근 들어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이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인터넷 비즈니스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경영환경의 변화는 기업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도덕적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다른 시스템에 침입해 자산이나 자금을 도용한다거나 기업의 기밀이나 내부정보를 빼내는 일들은 비윤리적인 행위임에 틀림없다.
최근 세계적인 대형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들이 해킹으로 잇따른 작동불능 사고를 빚으면서 '디지털경제 쇼크'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적인 온라인 증권회사인 미국 e트레이드와 인터넷뉴스 제공업체인 ZD넷 사이트가 한국시간으로 2월 9일 접속불능상태에 빠졌다. 지난 7일과 8일의 아마존닷컴(Amazon.com), 바이닷컴(BUY.com), e베이(eBAY), CNN의 웹사이트가 해커의 공격을 받은 후 연이어 발생한 것이다.
최근 해커들의 공격은 미 정보기관이나 정부 사이트 등에 대한 해킹과는 달리 암호 등을 풀지 않고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업체의 서버에 다량의 정보를 쏟아붓는 것이어서 쉽사리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 해킹 공격의 정확한 출처가 밝혀지지 않아 해킹 유형을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피해상황을 종합해 볼 때 '서비스 거부(DoS：Denial of Service)' 공격의 일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해킹의 특징은 엄청난 분량의 데이터를 웹사이트에 보내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리게 해 서버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서비스가 중단되고 고객의 요구에 응답할 수 없게 된다. 이번 경우 해커가 자기 시스템을 통해 직접 공격하지 않고 제 3의 컴퓨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해커의 위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며, 그나마 해결방법이라면 해킹 프로그램을 발견할 수 있는 탐색 툴을 이용해 수시로 시스템을 점검해 제거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문제점은 해킹의 의도를 전혀 알 수 없으며 이를 막을 수 있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특정 사이트의 서비스를 방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조직적인 범행인지 아니면 단순히 컴퓨터 실력을 과시하기 위한 장난인지 분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악의적인 해킹은 현재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 전 세계적으로 수십조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전자상거래 및 인터넷 비즈니스를 크게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컴퓨터 보안 전문가들은 해커들의 공격 때문에 최근 급증한 인터넷 상거래가 크게 위축되고 해킹에서 비롯된 소비자들의 피해를 보상하다가 관련업체가 파산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번 파문으로 디지털 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 나스닥시장 주가가 폭락했으며 국내서도 보안솔루션업계의 주가가 급등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중인 인터넷사이트 가운데 보안시설을 제대로 갖춘 사이트는 겨우 5-10% 선에 그쳐 해커들의 공격에 사실상 무방비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다음커뮤니케이션, 인터파크, 옥션 등 대형 인터넷 비즈니스 사이트를 비롯해 현대, 삼성, SK 등 인터넷 사이트 운영기업들은 급히 보안 솔루션 전문기업들과 손잡고 방화벽 같은 침입차단 시스템 보완설치작업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올해 안에 정보통신기반보호법을 제정해 금융과 전기통신 분야 등의 국가기간망을 대상으로 보호대상 시설을 등급별로 정해 특별 관리를 하고 침해사범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키로 했다.
해커의 본래의 뜻은 컴퓨터의 전문가들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현재는 범죄를 목적으로 해킹을 일삼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크래커의 의미와 합쳐져 나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프로그램을 무료로 보급하는 것은 단지 생계만을 위해 고되게 일할 필요가 없는 풍요로운 세계로 가는 한 단계인 것이다." 'GNU 선언문'에서의 20세기 위대한 해커로 추앙받고 있는 '리차드 스톨만'이 한 말이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원리에서 이러한 말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순수한 열정과 꿈은 본받기에 충분하다. 1950년대 컴퓨터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MIT를 중심으로 한 젊은 대학생들은 온통 컴퓨터 발전과 그 가치에 관한 생각뿐이었으며 완전한 정보공유라는 나름대로의 이상을 가지고 초기 컴퓨터의 진보와 시스템 프로그램에 지대한 공헌을 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발생하는 일련의 해킹사건들은 초기 진정한 해커들이 원했던 그러한 이상과는 거리가 먼 것만 같다. 과시욕으로 변질되어 가는 해커들에게 법적장치를 통한 처벌이 아닌 개인의 양심에 기초한 정직한 행동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들만의 욕심일까?
해커선언문
컴퓨터 전문가 해커(최근 사이트 해커문제에 관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