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의 혁명] "인터넷 21C"

[.com의 혁명] "인터넷 21C"

99년 6월 기준 미국 내 네티즌 인구는 1억명 정도. 전체 인구를 2억7000만명으로 보면 10명 중 3.7명이 네티즌이다. 빠른 인터넷 전송 속도와 수많은 웹페이지들, 리얼 타임으로 실리는 풍부한 자료, 전자 상거래를 가능하게 만드는 신용사회, 싼값의 인터넷 접속비용…. 미국은 네티즌 숫자에서뿐 아니라 각종 소프트웨어에서도 인터넷사회의 정상을 달리고 있다. 미국의 행정수도 워싱턴은 바로 이같은 소프트웨어를 창조해내는 또다른 인테넷 사회의 수도다. 종래의 경제문제가 인터넷 무역(e-trade)으로, 정치가 인터넷 정치(e-politics)로, 이념이나 사회문제가 인터넷 민주주의(web-democracy)로 흡수되는 과정에서 워싱턴은 파생되는 법적 문제와 운용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문명의 틀을 불과 10년 만에 전혀 다른 양식으로 바꾼 인터넷. 21세기로 향하는 미국은 그들의 미래를 어떻게 인터넷에 연결시키고 있는지 워싱턴에서 이뤄지는 세기적 실험을 알아본다. 워싱턴 중심가 케이 스트리트(k-street). 전세계 로비스트들로 북적이는 이 '로비의 거리'는 요즘 새로운 인간 군상들로 메워지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20·30대 벤처 사장들이 주인공. 한달 임대료 1000달러 미만의 초라한 사무실과 컴퓨터 1~2대가 가진 것의 전부지만 이들은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를 건다. 기업측에 투자를 요청하고 워싱턴 관계기관에 가능성을 타진한 뒤 미국 전역으로 자신의 창조물을 뿌려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다. 승부가 결판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2년. 성공을 하면 자신의 아이디어가 미국만이 아닌 전세계의 표준(standard)이 되면서 부와 명성을 함께 거머쥐게 된다. 99년 1월 설립된 스피크아웃(www.speakout.com)사. 현실공간보다는 가상 공간을 더 중시하는 워싱턴의 숱한 가상회사(virtual company) 중 하나다. 이 회사가 하는 일은 정치 관련 여론조사와 정치적 이슈 제공. 유권자들과 정치인들을 가상공간에서 연결시켜주며 돈을 벌고 있다. 회사 설립 불과 1년 만에 투자자들로부터 거둬들인 돈만 800만달러. 숱한 아류 웹사이트를 만들어내며 웹 민주주의(web democracy)가 훌륭한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회사의 추종자 중에는 클린턴 대통령의 전 선거고문인 딕 모리스도 포함돼 있다. 그는 지난 11월 보우트사(www.vote.com)를 설립, 스피크아웃사가 개척한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에 뛰어들었다. 미국인들은 워싱턴을 디지털 캐피털(Digital Capital)로 부르고 있다. 이 말은 워싱턴이 웹(web)을 통해 50개 주로 이뤄진 미국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국경을 넘어 전세계 200여 나라의 수도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의미한다. 전세계는 군사·금융 외교와 더불어 디지털의 세계, 즉 가상공간인 웹을 통해 이미 워싱턴 스탠더드(워싱턴이 갖고 있는 가치 기준)로 통합됐다는 것이 미국인들의 생각인 것이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프로그레스 앤 프리덤 파운데이션(Progress & Freedom Foundation·www.pff.org)은 97년이후 매년(99년은 아직 미발표) 미국 50개 주의 컴퓨터화 정도를 심사해 순위를 매기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스테이트 (Digital State)지수를 매긴 것. 심사 기준은 의회와 학교교육,사업규제, 세금,사회복지,법률자료 등 8개 항목. 조사결과 1위에 오른 도시가 워싱턴이다. 일반적으로 실리콘 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를 1등으로 떠올리겠지만 캘리포니아는 중간 수준인 24위에 올랐을 뿐이다. 워싱턴이 인터넷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을 구체화하는데 필요한 법과 예산 두뇌 그리고 미국을 통과하는 통신망 대부분이 워싱턴 주변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의회 펜타곤을 비롯해 100여개가 넘는 싱크탱크, 첨단기술을 보유한 기업 수 2위에다 생명공학계 기업밀집도 1위, 미국 내 인터넷 가입자를 가장 많이 보유한 아메리카 온라인(www.aol.com)과 인터넷 도메인 관리회사인 인터닉스(www.internick. com)사의 본부가 있는 곳. 연방정부 부처는 물론 인터넷 관련 기관들로 둘러쌓인 워싱턴은 디지털 캐피털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갖고 있다. 아이비리그의 인재들이 몰려들면서 워싱턴 주변 인터넷 관련 회사는 종사자의 16%가 석사 이상 학력이며 대학 졸업자는 40%를 넘는다. 워싱턴은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조달(funding)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전자 정치(e-politics)나 웹 민주주의(web democracy)를 사업화한 벤처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정치와 인터넷을 연결해 비즈니스화한 대표적 기업인 네티베이션사 (www.netivation.com)도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다. 네티베이션사는 서부 캘리포니아와 중부 아이다호, 동부 워싱턴으로 이어지는 3대 거점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총 2000만달러 상당의 주식이 나스닥에 상당돼 있다. 지난해 10월 1일자 워싱턴포스트지에는 "버지니아주의 민주당과 공화당 대표들은 네티베이션사가 제공하는 선거 관련 각종 소프트웨어를 일괄적으로 구매하는 데 합의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정치의 흐름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주의 깊게 봤을 이 기사는 앞으로 미국 선거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알려주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선거나 유세 기부금 모집과 같은 정치활동이 인테넷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티베이션이 개발한 소프트웨어 '보트넷(votenet)'은 후보자의 선거기금 모집과 정책 발표, 일반시민과의 대화, 후보자 PR 등 선거캠페인 전반에 관한 프로그램이다. 네티베이션사가 제공하는 정치 관련 소프트웨어 중에는 주기적으로 이메일을 통해 미 의회에서 쏟아지는 뉴스를 시민들에게 발송하는 캐피털워치(capital watch) 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네티베이션사는 다양한 정치 관련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이익단체와 연방정부에서 일하려는 후보자들의 동향 등을 분석, 서비스하는 사이트 (www.tray.com)와 시민단체들을 위해 각종 통계자료를 제공하는 사이트 (www.policyvoice.com),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이익증진과 관련 정보를 서비스하는 사이트(www.politicallyblack.com) 등이다. 네티베이션사가 성장세를 거듭하는 이유는 인터넷을 통한 정치활동이 기존 방법에 비해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편리함도 그렇지만 우선 '싸다는 것'이 수요자를 만들어내는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네티베이션사는 선거 후보자가 캠페인용 웹사이트를 운용할 경우 유권자 관리비용이 월 평균 2000달러(250만원 정도) 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워싱턴 근교 알링턴에 본부를 둔 코커스(caucus)사는 인터넷 회의 전문회사. 회사 팸플릿에 소개된 컨버세이션 컴퍼니(Conversation Company)'라는 말처럼 공간적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동시에 회의를 갖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현재 코커스사는 2000년 1월 중순부터 3주간 계속될 IBM 마케팅 회의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세계 26개국에 흩어진 IBM 직원 1500명이 웹을 통해 동시에 회의를 갖을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1500명의 IBM 직원이 장시간 사업장을 비우고 미국이나 어떤 지역에 모이려면 항공료와 호텔비는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우리는 그러한 비용을 줄이면서 시간적으로도 효율적인 회의를 주관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이 회사 3명의 CEO 중 한명인 린다 킴벨은 "인터넷 회의는 집단 채팅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집단 채팅과 다른 것은 영상과 음향을 비롯해 회의를 보다 부드럽게 만드는 갖가지 소프트웨어가 첨부된다는 점이다. 코카스사가 IBM의 인테넷 회의를 주관하면서 받는 금액은 총 15만달러. 회의 과정뿐 아니라 회의가 끝난 뒤 관련 사항들을 모두 CD롬에 담아 발송하는 일도 포함돼 있다. 코커스사가 99년 한해 동안 인터넷 회의 프로그램으로 벌어들인 돈은 1000만달러에 이른다. "인터넷 인프라가 나라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회의를 전부 영상화하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런 기술적 문제는 곧 해결되고 우리 사업은 점점 확대될 것이다." 상식을 뒤집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이 회사의 분위기는 사무실 입구에서부터 느껴진다. 인도와 중국풍의 인형들, 울긋불긋한 문양이 새겨진 라틴 아메리카 스타일의 카펫,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현란한 색깔의 모빌, 기모노를 입은 일본 스타일의 마네킹, 한국에서 가져온 듯한 낡은 곰방대…. 직원들의 배경도 재미있다. 대학때 전공으로 컴퓨터나 공학을 전공한 사람은 CEO를 포함해 15명의 전체 직원 중 단 1명. 심리학과 사회학 정치학과 같은 인문사회과학 졸업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린다 킴벨은 "인터넷이 기술적인 면에서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인간미가 없는 차가운 기계에 불과하다면 사람들이 멀리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에서는 직접적인 대인 접촉보다는 인터넷을 통한 접촉이 더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물리적 공간 워싱턴시를 능가하는 거대한 사이버 워싱턴시가 탄생하고 있는 셈이다. 사이버 공간을 흐르는 워싱턴의 고급 정보는 개인에게 무한한 비즈니스의 기회를 제공한다. 일본인 요코에 구미 씨가 워싱턴에 온 것은 99년 3월. "미국 워싱턴을 발판으로 미국과 일본을 연구하는 정책포럼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요코에 씨가 이같은 꿈을 위해 투자한 돈은 고작 54달러. 24시간용 고속 인터넷 전용선 비용이 전부였다. 고속 인터넷을 집에 설치한 요코에씨는 바로 워싱턴 내 동북아문제 연구자들을 찾아 나섰다. 방법은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워싱턴 내 각 싱크탱크와 정부기관 대사관 등에 이메일을 띄웠다. 이메일을 띄운지 1주일 만에 200여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요코에씨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포럼의 의제와 운영방식 등을 짰다. 제1회 포럼이 열린 것은 그녀가 워싱턴에 도착한 지 두달 뒤인 99년 5월. '대포동미사일 발사 이후 동북아 안보체제의 방향'이란 주제로 워싱턴 내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참가자는 60여명. 모두가 인터넷을 통해 만난 익명의 인물들이다. 요코에 씨는 현재 아홉 차례에 걸쳐 동북아문제 포럼을 벌여왔다. 당초 200명선이던 이메일 리스트는 현재 1000여명을 육박한 상태. 매달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포럼 내용은 이들 모두에게 이메일을 통해 서비스된다. 워싱턴의 웹 문화는 미국 군사력의 질도 바꿔놓고 있다. 미 군사력의 총본산인 펜타곤의 진정한 힘은 워싱턴 주변에 포진한 수많은 컴퓨터 전문가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펜타곤이 제공하는 특수한 인터넷망으로 연결돼 있는 이들은 미래의 군사 전략과 전쟁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 '인디펜던트 데이'를 보면 지구를 공격한 외계인의 우주선을 폭파하는 방법으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황당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 펜타곤에서 연구하고 있는 것이 그런 식의 전쟁전략이다.

자료원 :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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